[2016년11월6일 일요일] 블랙야크 100대명산 경기도 제일 용문산 고고

 

경기도 금강산으로 불리는 용문산

단풍도 보고 은행도 보러 ~ 고고

 

 

비올것처럼 하늘이 흐리네요 ~

 

 

이뻐서 사진 촬칵 ~

 

 

 

 

 

용문산 매표소 입장하기전 트릭아트도 보여서 촬칵 합니다 ㅎ

 

 

 

 

 

 

 

 

 

용문산 등산 안내도보면서 우리가 가야할길을 다시 봅니다

 

 

 

등산객 주의사항은 꼭 봐야할듯 첫번째

지정된 등산로외의 위험한곳에는 들어가지 맙시다

길 잃어서 혼났습니다...

 

 

 

 

용문산 코스별 등산안내

저희가 가야할 코스는 1코스입니다 ㅎㅎ

 

 

등산객들이 사진 찍길래 저두 찍어봅니다 ㅎ

 

 

 

용문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0호

10월달에 갔어야 했는데 너무 늦은 후회감이...

 

 

용문산 정상가기전

멋진분이 자전거를 들고 인증샷을 찍습니다

멋지십니다 ㅎㅎ

 

 

마당바위라고 하네요

정말 큽니다 여기서 20명이서 점심식사를 해도 될듯...

 

 

용문산 정상까지 약 900미터

다왔다 생각했는데 착각이였습니다

 

 

돗자리 피고 용문산 전경 감상 시작합니다

 

 

용문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멋지네요 ㅎㅎ

 

 

드디어 용문산 가섭봉 정상에 도착을 했습니다

해발 1157m

 

 

용문산 정상에서 사진도 찍어보구요 ㅎ

 

블랙야크 100대명상 용문산  인증도 찍어보구요 ㅎ

그리고 하산을 합니다 ㅎㅎ

 

 

 

 

 

 

지인분들이  용문산 우습게 보지말라고 했는데 올라가보니 정말 힘든산이네요 ㅎ

스틱이 아니였으면 많이 힘들었을꺼 같습니다 단풍과 은행 볼수가 없었구요 절정시기를 놓친듯....

그래도 블랙야크 100대명산 용문산 인증해서 기분은 좋습니다 다음산행은 내장산으로 고고 생각중입니다 ㅎ

 

 

 

경기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용문산에 대해서 설명 들어갑니다

 

경기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용문산(龍門山, 1157미터)은 경기도에서 가평군에 있는 화악산, 명지산 그리고 국망봉 다음으로 높다. 북쪽의 봉미산, 동쪽의 중원산, 서쪽의 대부산을 바라보고 있는 용문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빼어나며, 골이 깊어서 예로부터 경기의 금강산으로 이름이 높았다. 용문산이 언제부터 용문산이라고 불렸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며, 용문산의 옛 이름은 미지산(彌智山)이다. 「대동여지도」나 「동국여지도」에는 용문산으로 나오지만, 그보다 앞선 신경준의 『산경표』에는 일명 ‘미지’라고 부른다 하였고,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용문사는 미지산에 있는데, 그 산 이름은 용문이라는 절 이름으로 부른다”라고 밝혔다.

『용문사 중수기』나 이색이 지은 『대장전기』 또는 「정지국사비문」이나 「원증국사비문」에도 미지산 용문사, 미지산 사나사로 표기되어 있다. 그 미지산을 승려들은 “용문산의 고승대덕들의 덕풍지광(德風智光)이 충만해 있었다”라는 말로 풀이한다. 그러나 우리말 어원으로 풀어보면 미지란 바로 미르, 곧 용이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양평군은 “용문에 의지하고” 있는 곳이며, 용문이란 곧 용문산을 의미한다. 양평의 진산인 용문산을 두고 조선시대의 시인 이적은 “왼쪽으로는 용문산에 의지하고, 오른쪽으로는 호수를 베개 베었다”라는 시를 남겼다.

산세가 지리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북한강과 남한강이 산을 에워싼 채 흐르고 사방으로 뻗어내린 산줄기에 계곡들이 깊고 도처에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이 절경을 이룬다.

용문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절 용문사가 있다. 신라 진덕여왕 3년(649)에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진성여왕 6년(892)에 도선국사가 중창했다고 하나, 신라 선덕왕 2년(913)에 대경화상이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양평군지』에 따르면 창건 당시 당우(堂宇, 규모가 큰 집과 작은 집을 통틀어 일컫는 말)가 304칸에 300여 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다고 하지만, 절의 앉은 모양새나 그 터의 형세로 보아서 300여 칸의 당우는 너무 부풀려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뒤 몇백 년간의 기록은 찾을 길이 없다. 다만 고려가 쇠퇴기에 접어든 우왕 때 지천대사가 개풍군 경천사의 대장경을 이곳으로 옮겨 대장전을 짓고 봉안했다는 기록이 전하며, 1395년에는 조안대사가 용문사를 중창하면서 그의 스승 정지국사의 부도와 비를 세웠다는 기록이 전한다. 용문사는 1907년 의병 봉기 때 일본군에 의해 불태워지는 수난을 겪는다. 그 후 취운스님이 중창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그 유명한 용문산전투 와중에 큰 피해를 입고 만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들은 1958년 이후 지어진 것들이며, 정지국사의 부도와 비를 비롯한 몇 개의 부도와 석축들만이 옛 모습 그대로일 따름이다.

하지만 이 절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56대 경순왕이 고려에 나라를 바치자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는 나라 안에서 제일 크고 가장 나이가 많은 은행나무가 남아 그 옛날의 발자취를 전해주고 있고, 절 위쪽 용문산 중턱에는 세조에 얽힌 이야기가 남아 전하는 상원사와 사나사라는 절이 있다. 용문산에서 이름난 것이 뱀과 산나물인데 용문산의 산나물을 시로 읊은 사람이 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안국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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