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억짜리 아파트를 빼앗기게 된 기막힌 사연, 알고 보니..
2015년 12월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서울 서초구 내곡지구 공공분양 아파트 한 채를 매입한 유모(59)씨는 올해 초 아파트를 분양한 서울시 산하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로부터 황당한 통보를 받았다. 자신이 산 아파트에 부동산 처분금지 가처분이 설정됐고, 조만간 공사가 아파트를 환수한다는 내용이었다. 무슨 일인지 알고 보니, 이전 집주인이 불법으로 거래한 청약통장을 써서 해당 아파트를 분양을 받은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 공사에 통보된 것이었다.
유씨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공사는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려보냈다. 유씨는 “부동산 거래 때 등기부등본을 비롯해 관련 서류를 모두 꼼꼼히 살펴봤지만, 어디서도 위법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면서 “평생 모아 장만한 내 집을 한순간에 잃게 됐다”며 절망감을 토로했다.
◆ 소유자의 불법 거래 없어도 환수…일방적 ‘속물(屬物)’ 원칙 논란
현재 서울주택도시공사는 공사가 공급한 공공분양 아파트에 청약통장 불법거래와 같이 위법 행위가 적발될 경우 해당 아파트를 환수하고 있다. 문제는 입주 후 손바뀜이 일어난 경우에도 이 원칙을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씨처럼 청약통장 불법거래 사실을 모르고 아파트를 매입했다가 집을 빼앗기는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정작 서울주택도시공사나 서울시 모두 뒷짐만 지고 있다.
7일 서울주택도시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의 청약통장 불법거래 수사로 적발된 공사의 공공분양 아파트는 총 24채다. 이중 11채가 매매거래를 통해 제3자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로, 공사는 소유권이 불법 거래 당사자에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적발된 아파트를 모두 환수할 계획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는 아파트를 환수할 때 아파트 가격의 10%에 해당하는 위약금과 주택사용료, 원상복구비, 관리비 등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돌려준다. 분양대금을 받은 날부터 반환일까지 기간만큼 법정이자를 계산해 지급하기는 하지만 위약금과 각종 관리비에는 한참 못 미친다.
게다가 공사가 분양시 받았던 돈은 수분양자가 돌려받는 것이 원칙이라, 선의의 피해를 입은 제3자는 공사로부터 어떤 보상도 받을 수가 없다. 제3자의 경우 불법 거래를 저지른 수분양자를 상대로 별도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보상을 받아야 하는게 공사 원칙이다.
피해자들은 공사의 조치가 지나치다고 보고 있다. 소송 과정에서 드는 시간과 비용을 개인이 모두 감당해야 하고, 소송 결과 승소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피해자는 “불법 거래를 한 당사자는 300만원의 벌금만 내면 되지만, 이전 불법거래 사실을 모르고 산 선의의 피해자들은 더 큰 손해를 보고 있다”면서 “위약금과 관리비 등으로 빠지는 분양대금 공제액도 1억원에 달해 사실상 대출금을 빼면 최초분양자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공사는 관련 판례를 들어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분양 후 소유권이 제3자에게 넘어갔다는 이유로 환수 조치를 하지 않으면 불법 청약 브로커들이 이런 점을 악용해 또 다른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공사측의 설명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 관계자는 “제3자가 해당 주택을 거래하기 전에 불법 거래한 청약통장으로 분양된 주택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선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했다.
◆ “공사 재량권으로 선의 피해자 보호해야”
이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들를 구제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가 공사에 보낸 공문을 보면 “사업주체(서울주택도시공사)는 공급 후 해당 부정 당첨자 주택이 제3자에게 이전됐는지 여부, 공급계약을 취소할 경우 선의의 제3자에 대한 피해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공급계약 취소 여부를 결정 조치할 것”이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환수 여부는 공사가 최종 결정해야 할 문제지만, 환수조치를 할 때 공사에게 재량권을 부여한 셈이다.
최호정 서울시의원(새누리당)은 “환수된 아파트를 피해자가 다시 분양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갖추는 등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면서 “선의의 피해를 본 시민에게 구제책을 마련하는 것이 공사와 서울시의 책무”라고 지적했다.
한 법무사는 “관련 법 규정을 보면 불법거래된 청약통장으로 분양받은 주택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은 있지만, 분양 취소된 주택을 어떤 방법으로 누구에게 분양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은 전혀 없다”면서 “공사가 재량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에게 분양 우선권을 주는 것이 지금으로선 합리적인것 같아 보인다”고 말했다.
불법 거래와 환수에 관한 내용도 사전에 수요자들에게 정확히 공지돼야 한다.
현재 공사 분양주택의 입주자모집공고문을 보면 “불법행위가 적발될 경우 계약체결 후라도 계약을 취소하고 관계 기관에 고발 조치한다”라는 문구는 있지만, 불법 거래와 무관한 제3자에게도 이런 조치가 이뤄진다는 내용은 없다.
서울주택도시공사 관계자는 “다음달부터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의 입주자모집공고문에는 주택법 위반과 관련한 내용을 보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이란
목적물에 대한 채무자의 소유권이전, 저당권, 전세권, 임차권의 성질 기타 일체의 처분행위를 금지하는 가처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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